[안일운의 스타트업 법률 산책] 가상자산과 금융법제
Article posted in 2020-08-10 10:06:37 | VEAT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한지도 어느덧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을 수놓았던 '가즈아' 짤방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IT업계에서는 당시에도 이미 어느 정도 암호화폐에 대한 개념을 접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법조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두배씩 가격이 올라가는 이상한 자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몰랐고, 어떻게 법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 와중에 정부는 '가상징표'를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퇴출하기 위한 조치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비록 소소하지만 성과도 있었습니다. 가상자산 자체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센 요구 속에서도,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어려운(!)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제정됐습니다. 가상자산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준수해야 할 지침을 제공할 준비가 된 것이지요.
대부분의 법률 제정자들이 2018년 초 가상자산 폭등장을 통해 처음 가상자산을 접하게 됐단 사실을 감안하면, 초기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출발해 이 정도의 규제환경을 만들게 된 것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발전돼야 하는 가상자산 법제가 있습니다. 바로 가상자산을 '금융'에 영역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제입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특금법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을 '금융'의 영역에 넣은 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고객의 신원확인과 투명한 고객 자산관리를 할 것을 주문하고, 고객이 맡긴 자산을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IT시스템(ISMS)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자산을 새로운 금융의 한 분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은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상자산이 인공지능, 증강현실과 같은 다른 기술들에 비해 특별한 점은 바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금융의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찍부터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가상자산을 금융의 한 영역으로써 규제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습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SEC는 가상자산이 법률적으로 금융투자상품, 특히 '증권'에 해당한다면, 마땅히 기존에 증권을 발행해 유통하던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규제를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규제를 준수한다면 합법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 왔습니다.
나아가 개개의 가상자산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을 고안했고, 이는 사업자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SEC의 해석을 바탕으로 크립토 펀드, 가상자산 ETF, 가상자산 파생상품 등 새로운 금융 영역에 대한 규제와 기준이 공표되고 있습니다. SEC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트코인 선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등록을 승인하고, 비트코인 ETF에 대한 적법성 검토를 수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금융상품의 적법성을 판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은 가상자산 활용 금융상품이 적법한지에 대한 예측가능성은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상태입니다. 마치 월스트리트에서 증권금융 상품을 개발하듯 다양한 가상자산 금융상품이 개발되고, 여전히 적지 않은 기관투자자들이 블록체인 테크 기업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규제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을 전통적인 금융 법제와 조화시켜 적절한 규제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전국민이 투자 열풍에 휩쓸리고 있던 2018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가즈아' 열풍 이후 2년 반이 지난 이제는, 국내에서도 가상자산이 새로운 금융의 한 갈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 정비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가상자산을 활용한 금융을 무제한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SEC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규제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규제의 대상이 된다면 준수해야 할 규칙을 미리 공개하고, 이를 금융법제 전반에 통일적으로 적용하는 법제의 마련을 기대합니다.
'규제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다가오는 시대의 새로운 금융시장을 국내 가상자산 기업들이 선도해 나갈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